마니산 정수사


사찰소개

성보문화재

마니산 정수사

정수사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삼성각과 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그러나 1942년에 편찬된 <전등본말사지>에 의하면 대웅전 (12칸), 산신각(2칸), 대방(14칸), 노전(6칸), 요사(15칸) 등 현재보다도 더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불상으로는 대웅보전 안에 아미타불상을 비롯한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의 아미타삼존불 및 또 다른 관음보살좌상이 하나 있고, 불화로는 역시 대웅보전 안의 아미타후불탱 · 지장탱화 · 칠성탱화 · 현왕탱화 · 신중탱화 및 삼성각의 목각산신탱 독성탱화 · 칠성탱화 · 용왕탱화 등이 있다. 삼성각의 탱화는 전부 근래의 작품들이다. 그밖의 것으로는 부도인 함허대사 승탑이 있다.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조선 초기인 1423년(세종 5)에 준공되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매우 우수한 건축물로서 현재 보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양식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세에 올수 록 중건으로 인한 보수부분이 많아지면서 툇마루를 덧달아 오늘 날에는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변형되었다. 앞서 정수사의 역 사를 살펴보면서도 알 수 있었지만 우수한 건축물로 인구에 회자 되고 있는 것도 창건 초기와 후세의 거듭된 중건으로 그 양식이 혼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쇠락에 따른 중창, 그로 인한 변형에도 불구하고 건립 당시인 조선 초기의 양식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곳은 후면의 공포 부분이다. 건물내부는 정면 중앙에 불단을 두고 천장은 사주(四周)의 귀를 약간씩 접은 우물천장으로 만들었다.


건칠지장보살 및 아미타불좌상

오백나한전 안에는 아미타불좌상과 2체의 관음보살 및 지장보살이 있는데, 지장보살상을 제외한 불보살상들은 근래에 조성된 작품이다. 지장보살은 건칠상(乾漆像)으로서 개성(開城)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고 얼굴은 다소 네모지고 두툼하지만 얼굴 윤곽에 따른 옅은 요철의 표현으로 보아 나름대로 정성을 들인 작품인 것을 느끼게 해준다. 두 손은 밑에서 모아 보주 (珠)를 받쳐들고 있다. 또 목에도 이름다운 장식을 한 목걸이가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아미타후불탱화

구도는 그림 가운데에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그리고 그 주위로 관세음 · 대세지 · 지장보살 등의 팔대보살과 보살들 뒤쪽 좌우에 아라한 및 사천왕 등을 가득히 그려 넣은 형식으로서 1878년(고종 15)에 그려진 작품이다. 크기는 가로 232cm, 세로 202cm로서 전체 구도가 비교적 정밀하고 채색도 잘 남아있는 편이며, 그림 아래에는 제작년도와 그림을 그린 금어 및 시주자 들의 이름이 적힌 화기가 완전하다.


지장탱화

역시 1878년 제작된 것으로 대웅보전 왼쪽 벽면에 걸려 있다. 크기는 가로 184cm, 세로 156cm이며 그림 가운데에 지장보살을 크게 그리고 그 좌우로 지장의 권속(眷屬)과 시왕(十王)을 표현했는데, 지장보살 뒤쪽 좌우에 있는 권속들의 얼굴이 동물의 그것을 하고 있는 점이 특별하다. 또한 지장보살 앞쪽 좌우에는 동자가 있으며 이 가운데 왼쪽 동자는 등에 함을 지고 있고 오른쪽 동자는 지장이 들고 있어야 할 석장을 대신 들고 있는 점도 색다른데, 이 같은 도상은 드문 것이다. 그림 아래에는 화기가 잘 남아있다.


칠성탱화

후불탱화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다. 크기는 가로 203cm, 세로 153cm로서 그림 가운데 흰소가 이끄는 수레가 있고 거기에 연화 좌에 앉아 있는 치성광여래를 비롯한 7여래가 있다. 그 아래는 좌우로 보관(寶冠)을 쓴 일광, 월광보살이 배치되었고 다시 그 밑으로는 과일접시를 받쳐든 두 명의 동자가 표현되었다. 이 같은 기본 구도는 조선 후기의 칠성탱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법이다. 아미타후불탱화, 지장탱화와 마찬가지로 1878년에 그려졌다.


현왕탱화

신중탱화 이밖에 대웅보전 안에는 현왕탱화가 후불탱화 왼쪽에 그리고 신중탱화가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다. 둘 다 화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제작 년도는 알 수 없지만 현왕탱화는 1851년에 그려진 것으로 전하고 있고 신중탱화는 대략 1910년대 이후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왕탱화는 그림 가운데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현왕을 중심으로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현왕 뒷쪽으로는 병풍 앞에 서있는 동자가 좌우로 있고 그 바로 아래쪽에 현왕의 좌우보처인 대륜성왕(大輪聖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그리고 다시 그 아래로 판관, 녹사가 둘러서서 마치 회의하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 현왕 앞에는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책과 여러 필기도구들이 놓여져 있다. 그림 상단에 현왕을 다른 인물들보다 크게 그리므로써 중심을 잡고 있고 다시 그림 아래쪽에도 판관과 녹사들을 둥글게 자리잡도록 나타내고 있어 전체적인 구도가 산만하지 않고 안정감이 있는 등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채택도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다. 그림의 크기는 현왕탱화가 가로 90cm, 세로126cm, 신중탱화는 가로198cm, 세로 191cm이다.


함허대사 승탑 (강화군 향토유적 19호)

1426년 절 이름을 지금처럼 고치고 가람을 중수했던 함허 기화의 부도이다. 승탑의 구조는 한 장의 돌로 된 지대석 위에 기단부를 만들고 그 원형의 탑신과 육각형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 위로 상륜부를 두어 장식했다. 아래위로 구성 된 기단부에 연꽃무늬가 장식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무늬장식도 없다. 옥개석이 육각형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신라 말 고려 초 승탑의 기본 형태 였던 팔각원당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높이 156cm.


바위 탁본

정수사의 바위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탁본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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